문서 보기되돌리기역링크Copy this page맨 위로 문서의 이전 판을 선택했습니다! 저장하면 이 자료로 새 판을 만듭니다. 미디어 파일 ====== 2002 외무 제3문 ====== <well> 비스마르크의 대외정책을 독일통일 전과 후로 나누어서 설명하시오. (25점) </well> <list-group> * [[외교사:서양사:2_과도조정기:1871_독일_통일|]] * [[외교사:서양사:2_과도조정기:1866_보오전쟁|]] * [[외교사:서양사:2_과도조정기:1870_보불전쟁|]] * [[외교사:서양사:3_비스마르크_보장체제:비스마르크_동맹체제|]] * [[외교사:서양사:3_비스마르크_보장체제:1879_독오동맹|]] * [[외교사:서양사:3_비스마르크_보장체제:1881_제_2_차_삼제협상|]] * [[외교사:서양사:3_비스마르크_보장체제:1882_삼국동맹|]] * [[외교사:서양사:3_비스마르크_보장체제:1887_독러재보장조약|]] * [[외교사:서양사:3_비스마르크_보장체제:1887_지중해협정|]] </list-group> =====통일 이전: 현상타파 정책===== ====현상타파 정책의 필요성==== * 비스마르크가 취임하던 때 프로이센은 이미 군사적으로 강대국 * 통일을 이루기 위한 현상타파 정책 *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, 프랑스와의 전쟁을 통한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변 강대국들의 호의적 중립이 필 * 통일 전쟁 수행 와중에 타국의 침략까지 대응하는 상황을 피해야 하기 때문 * ‘철혈정책’ 하에, 외부세력의 중립화 + 오스트리아, 프랑스와의 각각의 전쟁을 준비 ====현상타파 정책의 전개==== * 당시 프로이센은 소독일주의를, 오스트리아는 대독일주의를 기반으로 한 통일 방안을 내세워 독일 통일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 * 올뮈츠 굴욕에서 밀려난 프로이센은 1853-1856년크림전쟁 시기 오스트리아의 대외정책 실패로 말미암아 힘을 축적 * 보오전쟁에 앞서 * 1863년 알벤스레벤 협정으로 러시아의 호의적 중립 확보 * 1865년 가슈타인 협정으로 오스트리아와의 동등한 지위를 확보 * 같은 해 베아리츠 회견에서 라인지방과 베네치아를 미끼로 프랑스의 중립 확보 * 1866년 이탈리아와의 동맹 * 프랑크푸르트 연방 의회에 대독일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개편안을 제출, 보오전쟁에 돌입 * 보불전쟁에 앞서 * 베네데티 초안을 활용, 영국을 중립화 * 1870 엠스 전보사건으로 보불전쟁을 유발하여 승리 * 1871년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의 성립을 선포 =====통일 이후: 현상유지 정책===== ====현상유지 정책의 필요성==== * 더 이상의 확장을 함으로써 여타 열강들의 경계심을 사기보다는 영토 욕심을 내지 않고, 식민지도 갖지 않는 ‘만족한 독일’의 모습을 고수 * 중부유럽의 적당한 강화를 통해 프랑스와 러시아를 동시에 견제하려는 영국의 이중장벽정책(Double Barrier)과도 부합 ====현상유지 정책 전개==== * “비스마르크 보장체제”라 불리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동맹관계로 나타남 * 비스마르크 동맹체제 * 1879년 독오동맹(dual alliance)을 중심축으로 * 1881 독-오-러 3제협상 * 1882 독-오-이 3국동맹 * 1887 영국을 포함한 지중해협정 * 1887 러시아를 끌어들인 독-러 재보장조약으로 구성 ~~NOFOOTER~~ ~~DISCUSSION~~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상자에 있는 모든 글자를 채워주세요. A B R R V 이 필드는 비어 있도록 유지하세요: 저장 미리 보기 취소 편집 요약 참고: 이 문서를 편집하면 내용은 다음 라이선스에 따라 배포하는 데 동의합니다: CC Attribution-Noncommercial-Share Alike 4.0 International